‘문제 해결’과 관련해서는 정리 중인 디스턴싱 책 원고에서 더 명확히 개념을 확립하려고 했는데, 마침 좋은 질문이네요. 제게 좋은 기회를 미리 마련해 주셔서 감사해요!
많은 분들이 ‘거리를 두고 바라본다’는 것을 지나치게 현실 순응적이라고 봅니다. 현실회피가 아닌가 여쭤보는 분들도 있고요. 마인드풀니스 개념에서도 비슷한 비판이 제기되곤 하죠.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아주 경쟁적인 회사가 있다고 생각해 보죠. 적자생존 그 자체의 환경입니다. 사람들은 치열하게 경쟁하고, 회사는 경쟁을 부추깁니다. 고성과자들은 대우하는 반면, 저성과자들은 비정하게 몰아냅니다. 고성과자들은 인정받고 더 열심히 하여 더 좋은 성과를 내는 선순환의 길로 들어서는 반면, 저성과자들은 비판과 압박으로 인해 주눅이 들어 더 역량이 발휘되지 않고 결국 더 안 좋은 성과를 내는 악순환의 길로 들어섭니다.
자, 이제 이 회사에서 마인드풀니스를 사내 문화로 도입했다고 가정해 볼게요. 마인드풀니스 또한 역시나 내적 경험과 새롭게 관계를 맺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주된 수단이 명상인 것이지요. 이때 마인드풀니스 도입의 의도를 어떻게 바라볼 수 있을까요? 회사는 권위적이고 부당한 환경에 순응하는 수단으로 마인드풀니스를 도입하는 건 아닐까요? “모든 문제는 내면에 있어”라고 말하면서요.
디스턴싱에서도 비슷한 의문이 제기되곤 합니다. “현실은 그대로인데 그저 거리를 두는 게 궁극적인 의미가 있을까?” 이는 제가 디스턴싱의 개념에서 ‘행동’ 부분을 충분히 강조하고 설명하지 못했기 때문인데요. 사실 디스턴싱의 핵심은 그저 생각과 거리를 둔다는 것이 아니라, 생각과 거리를 둔 후 마주하는 부정적인 내적 경험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내가 해야 하는 것들을 행해나가는 것입니다.
부당한 환경에 놓여있다면 마땅히 환경을 바꾸고자 노력해야 합니다. 가정폭력을 당하고 있을 때 느끼는 우울과 불안감을 그저 바라보고 있는 것은 정답이 아닙니다. 그 환경에서 벗어날 수 있는 조치를 취해야겠죠. 문제는 그 과정이 너무도 힘들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이의 등에 칼을 꽂는 기분이 들 수도 있고, 가족을 배신하는 기분이 들 수도 있고, 또 이혼과 같은 절차를 밟게 되는 것이라면 주변의 시선이 걱정될 수도 있습니다. 그 모든 이유들 때문에 의지가 생기지 않죠. 하지만 행동해야 합니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삶의 모습, 나의 가치가 ‘설령 폭력을 당할지언정 가정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사랑과 존중의 환경 속에서 삶을 이어 나가는 것’이라면 그 가치에 전념해야 합니다. 물론 힘들겠지요. 하지만 가치에 초점을 두고, 마주하는 부정적인 내적 경험들과는 거리를 두면서, 행동을 실천해 나가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개선될 수 있는 것들이 있다면 마땅히 개선을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취업이 안 되고 있을 때 느끼는 무기력과 초라함은 그저 거리를 두고 바라보고 있는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회에서 유의미한 역할을 하는 것이 나의 중요한 가치 중 하나라면 그러한 환경을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죠. 하지만 역시나 그 노력 과정에는 수많은 의심들이 떠오릅니다. “내가 될까?”, “나는 안 돼”, “나는 무능해”, “나는 이미 늦었어”, “나는 진짜 왜 이럴까?”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그 모든 경험들을 하나의 심리적 사건으로 바라보고, 그것과 무관하게 나의 가치를 향한 선택을 행할 수 있는 연습을 이어 나갈 수 있습니다.
요컨대, 중요한 건 거리를 두는 것 그 자체가 아니라 ‘거리를 둠으로써 벌어진 틈에 무엇을 채우느냐’일 것입니다. 명제에서 설명하였던 것처럼, 수용과 변화는 결코 떼어놓을 수 없는 개념이며 한 가지만 개념만으로는 궁극적인 의미를 찾아낼 수가 없습니다.
“뭐든지 한 발짝 뒤에서 바라보는” 연습이 익숙해지기 시작했다면, 이제는 그에 따라 삶을 변화시켜 나갈 시간입니다. 아마 그 과정은 더 힘들 겁니다. 마음엔 관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변화하고자 하면 부정적인 내면은 더 강조되어 보이는 법입니다. 하지만 조금씩 디스턴싱을 적용해 나가며, 작은 변화부터 하나씩 진행할 수 있을 때, 언젠가 천천히 삶의 톱니바퀴가 돌아가는 것이 느껴질 겁니다. 일단 톱니바퀴가 돌기 시작하면, 이후에는 이것을 돌리는 일이 훨씬 더 수월해집니다. 그때부터는 악순환이 아닌 선순환으로 나아갈 시간입니다.🍀